내 느낌, 내 생각

도로 눈을 감아라

거연천석 2009. 2. 25. 22:49

 본분으로 돌아가기를 생각하며 "열하일기"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살펴본다.

서화담 선생이 밖에 나갔다가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이유를 물은 즉, 그 사람 대답이 그는 어릴 적 소경이 되어 수십 년간 장님으로 지내다가 오늘 아침밖에 나왔는 데, 갑자기 세상이 환하게 보여 너무나 기쁜 나머지 서둘러 집에 돌아가려는 데,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어 울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서화담 선생은 "도로 눈을 감으라" 그러면 '집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단다. 그래서 소경은 다시 지팡이를 두드리며 몸에 익은 길을 찾아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글씨 공부를 할 때 임서(臨書)를 하는 데, 처음에는 법첩 글씨의 형태를 임서하는, 즉 형임(形臨)에 치중하고 다음에는 법첩의 글씨를 쓴 분의 뜻을 읽어 내려는 의임(意臨)의 단계에 이르려는 노력을 한다. 다음으로 창작의 단계에서는 자신의 혼을 불어넣어 "신운(神韻)이 깃들게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일이 있다.

연암 선생은 주로 글쓰기에서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것을 강조한 말씀으로 보이는 데, 이것은 비단 글쓰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듯하다. 장님이 눈뜬 세상에서는 온갖 망상이 눈에 들어와 오히려 혼돈이 와 길을 잃어 헤매고, 다시 눈을 감아 혼돈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찾아 본래의 자기로 돌아간 것이다. 이것은 정신의 소중한 면을 강조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창작에서 정신 또는 혼이 깃들지 않은 것은 결코 훌륭한 작품에 들지 못할 것이며, 영원한 예술품으로 남지 못할 것이다. 그 작품을 감상할 사람은 심미안을 갖추지 못했다면 작가의 진정한 의도를 읽어 내지 못할 것이 아닌가?

 최선의 경쟁력은 가장 자기 다울 때 생기는 것이기도 하려니, 한국도 가장 한국적일 때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신체에 함부로 칼을 대어 비슷한 얼굴로 만드는 성형수술이 어찌 각자의 특징을 보여 줄 것인가? 점점 어려워지는 요즈음 진정한 자기로 돌아가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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