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느낌, 내 생각

의복지절

거연천석 2010. 7. 2. 06:58

 

 

 우리는 의.식.주라 하고 중국 같은 나라는 식.의.주라고 한단다. 그 만큼 우리는 옷에 관하여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물론 개인별로 가치관이 달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흔히 "옷이 날개다", "입은 거지는 얻어 먹고 벗은 거지는 얻어 먹지 못한다"는 등 우리는 옷에 관해 비중을 많이 두고 있는 편이다. 옛부터 의복이란 단정하고 활동하기에 편하도록 입어야 한다고 했다. 천의 종류도 천연섬유로 고급품이라고 할 수 있는 '비단', 다음이 면화제품인 '무명' 또는 '삼베' 정도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비단, 무명, 삼베 종류가 고가의 좋은 옷감으로 각광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옛날에는 비단이 귀하고 지배계층에서 사용하였을 것이고 목화로 만드는 무명이라는 천 종류는 아무래도 서민들이 이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비록 무명으로 된 옷이라도 깨끗하게 세탁하여 단정하게 입는 것이 올바른 '의복지절'이 되었을 것이다. 요즈음에는 기능성 옷이라 하여 야외에서 활동하기에 좋도록 그 기능에 맞도록 만든 옷이 상당히 고가로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산을 좋아 하고 산악 자전거를 이용하는 등 레포츠를 즐기려 거기에 어울리는 복장을 갖추려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단다. 국내 산을 다니는 '하이커' 수준의 등산이라면 요즈음 많이 찾는 기능성 원단으로 흔히 '고어텍스'라고 일컫는 천으로 만든것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즐길수 있을 것같은데......,

 산악회에서 활동하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빌리면  같은 동아리에 끼려면 어는 정도 수준의 일체복을 갖춰입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갖춰 입으면 기백만원을 넘기는 정도라고 하니 과연 국내의 산을 오르는 정도라면 그렇게 고가의 기능성 옷을 걸쳐야만 등산을 즐기고 산악자전거 등 레포츠를 즐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기야 고가의 기능성을 입어서 안전성이라든가 우수한 기능을 선택해서 나쁠거야  없겠고 아울러 멋져 보이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만,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비근한 예를 든다면 달나라에 갈 때는 로켓트 우주선을 타야지만 이웃집 가는데 우주선을 이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천문학적 숫자를 계산할 때는 수퍼 컴퓨터가 유리하지만 간단한 숫자를 계산 할 때는 암산이나 주판을 이용함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해 명품을 걸치고, 다른사람에게 자기를 알리는데 유리 하도록 하기 위한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유명 디자이너의 소위 '작품'이라는 옷을 입는다든가 어쨓든 좀 더 자신을 좋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얻고 싶지는 않지만, 더러는 '짝퉁'이라는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는 이 지경까지는 원하는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찌되었건 이러한 욕구가 강한사람들의 마음을 채울길은 엄청 멀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생활이 너무 복잡 다양해져 가고 장소와 목적 또는 기능성 까지 따져서 옷을 달리 입어야 할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고려해야 할 것이 더 많아졌다고 보아야 겠다. 사교적인 목적 모임일 경우는 더욱 고급품으로 자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갖춰 입는 데 타인의 이목을 의식하게 되는 경향이 짙어진다. 우리가 평소 생활에서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의복지절'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탓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돈을 많이 들여야 좋은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다. 수년 전 '옷 로비'사건도 이러한 잘못된 의복지절의 후유증이 아닌지 .....그래서 생활의 단순화가 있어야 이러한 폐단을 줄일 수 있겠다.

 

 명품 구입 욕구를 채우기 위해 '명품계'라는 것도 있다고 하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범죄까지 저지르는 사례가 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현세태의 풍조를 어찌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오히려 옛 사람들의 의복지절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수 일전 어느 방송에서는 명품의 구입 욕구를 채우기 위해 실물크기의 몇분의 일로 줄여서까지 명품 소유 욕구를 채우는데 사업목적을 가지고 상품을 개발, 생산하고 있는데 그것이 성업중이라 한다.

 특히 2010년의 절반인 6월을 보내면서 6.25 동족 상잔이 일어났던 60년 전 그때 우리의 빛바랜 사진 속에 보이는 의복들을 살펴보면 지금의 우리 의복과는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가! 그 드러남의 풍족함이 우리의 정신을 더 황폐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본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품이라는 것을 걸치고 명품 인생 흉내라도 내어보고 싶은 욕구의 표출이라고 해야 할까? 옛날 신분이 구분지어지는 계급사회에서나 있었을 일이지만 오늘날 모두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그 사람이 어떤 의복을 걸치고 있느냐에 따라 달리 대우하려는 풍조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급차를 타려면 거기에 맞는 행동을 보여야 바른 대우를 받을 것이고, 값비싼 천으로 유명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옷을 입으려면 거기에 어울리는 행동거지가 있어야 거기에 합당한 대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실망만 안겨 줄 것이고 오히려 그 천박함을 드러내는 결과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