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느낌, 내 생각

대한민국 사회의 좌표는 어디쯤일까?

거연천석 2011. 7. 23. 17:32

 

 

 

 

 베를 짤 때는 가로 실과 세로실 한 올 한 올 끊어짐 없이 교차하면서 옷감이 만들어지고, 지도에서는 위도 경도가 만나서 위치가 파악되며, 이 사회는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가 조화롭게 만나야만 원만한 사회생활이 보장되리라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 즉 가족관계에서는 핵가족화, 상대적 평등이 아닌 절대적 평등 강조에 따른 가족관계의 붕괴를 부르는 이혼 급증으로 파괴되는 가정, 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교실 붕괴 현상이나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세대 간의 충돌 사건 등을 접하면서 과연 우리 사회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소통의 부재다. 또는 갈등을 풀어내는 기술 훈련이 안되어 있어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서다. 소통을 위해서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등 등 여러 가지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 

 

 

 

 우리가 60년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우리보다 물질적으로 앞선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빠져 우리의 혼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지나치게 편의성을 쫓아가다 사람이 기계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는 현상을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을 것이다. 조직사회에서는 종적 관계를 대표하는 연공서열형 대신에 서양의 횡적 관계를 앞세우는 평등사상이 경영학에서는 능력 우월 성과주의로 나타나, 학교에서는 지식 전달을 얼마나 잘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어 세칭 일류라고 일컫는 상급학교에 얼마나 많이 진학시키느냐를 놓고 유능한 교사 좋은 학교로 평가하는 풍토로 변하고, 그러다 보니 사실은 더 중요한 인간의 기본적 소양을 다듬어 주어야 할 교사의 역할이 단순한 지식 전달자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자본주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주식회사는 성과가 없이는 생존자체가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경쟁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고, 사회는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져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을 접하거나 언론 매체를 통해서 뉴스로 접하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이다. 이제 와서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이 우리의 정체성에 대표되는 경로효친 사상을 잃어버림으로써 급속하게 수직적 관계가 무너져 버렸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신세대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의 따뜻한 정서를 크게 못 느끼면서 자라다 보니 참 불행한 세대인지도 모른다. 따뜻하고 포근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릎과 품에 대한 그리움을 모르는 세대가 되는데, 신학문이라는 서양사상으로 교육받은 엄마 아빠가 크게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좋은 경로효친 정신을 잃어버리는지도 모르겠다. 서양 사상에서 평등관계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바람에 우리 것 중에서 소중한 것을 망각하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다행스럽게 교육계에서도 늦게나마 감성지수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회사에서는 감성경영을 내세워 조직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 추세이고 고객을 감동시켜 구매욕구를 자극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우리의 가정에서 자식교육을 하면서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집안에 어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아이들 공부에 방해되는 것이 두려워 기침소리 조차 조심시키지는 않았는지? 어른들이 경험한 생생한 지혜들을 간섭이나 잔소리로 여겨 피하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소위 선진국이라는 데서 받아들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절대적으로 우월한 사상이라고 단정하여 우리 것의 좋은 점을 찾는데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자녀 중에서 수험생이 있다면 하루라도 학업에 소홀 해질까를 염려하여 장례식에 조차 참석시키지 않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가? 혹시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와 선생님의 흉을 볼 때 같이 동조하지는 않았는지? 우리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잘 보살펴 달라고 선생님에게 돈봉투를 내밀어 놓고, 집에 돌아와 아이 앞에서 그 선생님을 욕하지는 않았는지? 이웃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하라고 당부해 보기는 하였는지? 모든 인성교육의 출발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므로 가장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가정교육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학교와 사회를 탓하기에 앞서 부모 된 사람이 가정교육의 일차적 책임을 느끼고 행하여야 한다.

 

 

 

 오늘날 사회는 생존을 위해 점점 팍팍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체취가 풍겨야 인간답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각박한 세태 속에서 때로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일도 가끔은 듣거나 목격할 때면 그래도 아직 이 사회는 각박하지만은 않은 세상이구나 하고 느낀다면, 나부터 우리의 좋은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그만 노력이라도 기울여 보자.

 지나친 업적쌓기에 매몰되어 서두른 탓에 파헤쳐진 강이 홍수에 범람하고, 서둘러 이룩한 KTX 고속열차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 우리들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지켜가면서 받아들이도록 해보자. 나 한 사람은 이 사회의 날줄이요 씨줄이기 때문에 다른 씨줄과 날줄이 조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훌륭한 베를 짜내기 위해서는 한 올 한 올 모두 끊어지면 제대로 된 옷감이 못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대한민국 좌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겠지만,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난들 전적으로 믿기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 가치를 높이고 현명한 길을 찾아서 올바른 자리매김이 있어야 반듯한 사회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