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나의 이야기

상주 돌아보기 2일차

거연천석 2013. 10. 22. 06:04

 

 택리지에 상주의 다른 명칭은 낙양(洛陽)이라고 하는데, 조령 밑에 큰 도회지로서 산세가 웅장하고 들이 넓다. 북쪽은 조령과 가까워서 충정도 및 경기도와 통하고, 동쪽으로는 낙동강에 임해서 김해 및 동래와 톻한다. 육로로 운반하는 말과 짐을 실은 배가 남쪽과 북쪽에서 물길과 육로로 모여 드는데, 이것은 교역하기에 편리한 까닭이다.

 

 모텔을 찾아 안내 책자에 잘못된 것을 알려주고 상주를 소개하는 홍보 책자를 3권 얻어 방으로 올라갔다. 우선 샤워부터 하고 난 후 속옷을 세탁하여 하루밤 사이에 건조되기를 기대하며 .... 물론 여유분 속옷이  있지만 모텔에 숙박을 하는 동안 세탁을 해 놓아야 바꿔입기가 좋은 듯하다는 생각에서다. 간편한 복장으로  PC방을 찾아 나섰으나 한참을 헤매다 찾았다. PC방은 담배연기로 자욱하여 얼른 사진만 저장시키고 나왔다. 딕카에 담긴 사진을 비워두어야 남은 여정에서 사진을 저장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편안한 잠자리에서 하루밤을 잘 보내니 일찍 잠이 깨어 이른 아침 근처 왕산공원을 산책하고 상주 향청과 공원을 한 바퀴 돌아와 오늘 일정을 잡았다. 자동차를 모텔에 맡기고 점심 때즘 찾으러 오겠다고 약속하고 간단한 짐을 챙겨 중앙시장 근처에서 2,500원으로 된장국 아침식사를 했다. 선산에서도 그랬지만 음식값이 저렴하고 푸짐하다.

 

 

 

상주읍내 북쪽을 흐르는 북천을 따라 보은쪽으로 가는 길가에는 임란 북천 전적지가 있다.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대항해 우리 관군과 의병들이 격전한 전적지로 선조대왕이 상주전역에 복호(부역의 면제)를 내려준 유일한 지역이다.

 

 

보은 가는 길로 계속 가다 보면 우측 연원동에 자리한 흥암서원은 대원군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에 하나로써 성리학자 송준길(1606~1672)선생 위패를 모신 곳이다.

 

 

 

 

 숙소에서 출발시에는 우복종가와 동학교당 유물전시관을 살피고 올 계획이었지만 가파른 오르막 길을 몇 차례 오르니 힘이 많이 들어서  외서면 우산리에 있는 우복 정경세 선생 종가에만 들렀다. 종가를 지키는 종부와 그 아드님이 친절히 대해 주셨다. 특히 자상해 보이는 종부께서는 외가가 바로 나의 고향 동네 안동 박곡이고 풍산에서 이 곳으로 시집을 왔단다. 더구나 바쁘신 중에 커피까지 한 잔 하고 가란다. 종가를 지키는 어려움이 있지만 긍지를 가지고 계신듯 했다. 이 곳 저 곳을 살펴보고 하직인사를 하고 나왔다. 항상 고택이나 훌륭한 사찰을 방문할 때 마다 느끼지만 옛날 훌륭한 어른들은 오늘날 처럼 도로가 없었음에도 깊은 산골과 마찬가지인 곳에 용하게도 풍광이 좋고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춘 지역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복 종가 앞으로 흐르는 이안천은 백두대간 형제봉에서 발원하여 동관의 억시기 마을과 지명골을 거쳐 밤원 앞을 지나 수회동과 염소목을 통과한 후 함창에서 영강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