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부쳐
올해 추석을 보내며 우리에게 추석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생각해 본다.
추석 일주일 전 토요일 형님 내외분과 벌초를 마치고 마련한 과일과 떡 조금 그리고 술 한 잔을 올리고 오리라는 계획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한식 무렵에 가보지 못하고 여름이 가까워서 산소 주위에 잡풀이 많을 것에 대비하여 제초제를 뿌리고 왔었지만 도착해 보니 예초기를 사용해야만 했다. 두 시간 정도 풀베기를 마치고 떨리는 팔은 운전하기에도 힘들 지경이었다.
일주일 후에 추석을 맞이 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차례를 지내고 아내와 아이들 둘을 포함 넷이서 안동으로 향했다. 추석 당일 출발하면서 대구 칠곡 간은 묘지공원이 있어서 항상 교통지체가 이루어지는 것을 대비하여 영천으로 우회를 택했다. 원래 금년부터 형님 건강도 안 좋고 추석 당일 산소를 찾아 시제를 대신하던 것을 벌초할 때 술한 잔 올리고 집에서 차례를 올리기로 결정했지만 내가 소문중 유사를 맡은 관계로 고조부 내외분을 비롯한 선대 조상일에 얼굴이라도 내밀어야 할 처지가 되어서 바쁜 일정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비록 늦게 도착했지만 성의를 보이기는 했다.
씨족 사회에서 8촌까지는 같은 고조부를 모시는 것이다. 우리가 농경사회 중심이던 시절에는 어느 촌락이든 거의 이웃에 살던 씨족들이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더구나 우리 고향은 임하댐으로 수몰민로 변하여 거의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추석 같은 명절이 아니면 기껏 경조사 때나 만나 보던 것이다. 그러니 일 년에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러니 이런 명절이 있어서 그나마 만나 보고 얼굴은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는 된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이것이 우리가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이나 선산이 있는 곳으로 모이기를 한다. 그리고 떠나지 못하고 남은 친척들이 몇 집 선산 아래에서 지키고 계시니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안에 생존하고 계시는 분들마저 돌아가시면 더 이상 만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간단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도시에 사는 친척들이 마련한 조그만 선물로 고향과 선산을 지키는 고마움에 감사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다시 발길을 돌리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런 명절이 없다면 가질 수 없는 것은 기회로 생각한다. 우리가 제사를 없애자는 얘기나 묘지가 부족하니 화장을 하자느니 수목장을 하자느니 벌초가 힘드니 아예 묘지를 없애자 명절 증후군 등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한국 사회가 유지되고 지탱하는 힘이 뿌리를 찾아 나서는 힘든 길에서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기일을 맞이하여 그를 매개로 하지 않는다면 형제자매가 이런저런 이유로 함께 얼굴을 맞대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마저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