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은 여물어 가고>
이웃집 아저씨와 길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우리집 옥상쪽을 바라보다가 벽돌 틈에 무언가 푸른색 식물이 보이는 듯하여
저기까지 왠 잡초가 날까 중얼거리며 망촛대로 여겼더니,
이웃집 아저씨가 저거 '해송'같은데 한번 가보라고 하여,
눈도 침침하니 의심스럽고 확인차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과연 소나무 종류다.
벌써 솔순까지 나와서 뚜렷한 소나무 종류다 과연 어떤 종류 소나무일까 궁금하다.
오늘날 산업화사회에서 인간성의 상실 문제가 그 도를 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에서는 특히 지식전달이 주목적이 되다시피하고, 내 자식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류만을 지향해야 하고,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녀를 몰아치고, 사회는 온통 정신에 문제있는 사람들만 득실거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론의 시회면을 장식하고있다. 과연 이대로 간다면 우리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가끔은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예절을 찾아야 한다고 외치고 인간성을 찾아야 한다고도 하는데 별로 귀 귀울이는 이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조상들이 공부하는 것은 우선 수신(修身) 즉 인격수양이 우선이고 다음이 제가(齊家) 즉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것 다음에 벼슬을 위해 과거보거나 관리가 되는 길을 찾아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는 것을 생각했고 참다운 선비라 일컬어지는 이는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그를 따르는 제자를 훌륭히 기르는 일에 몰두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오늘날의 교육제도 아래서도 무명교사를 예찬하고 싶고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로 인정하고 싶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소에 훌륭한 교사로 생각하는 분은 어떻게 사람마다의 좋은 점을 잘 찾아주어 자신의 갈길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 좋은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있다.
씁쓸해지는 스승의날을 생각하며 세상의 뭇매를 맞고 있는 교육현장을 바라본다. 생각할수록 죄송해지는 어릴적 선생님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귀여워 해주시던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반성해 본다.
글씨를 제법 잘 쓴다고 유난히 판서를 나에게 많이 시키시던 선생님... 점심시간이면 학교옆 사택으로 데리고 가서 사모님이 손수 만드신 콩나물과 김치를 넣은 볶은밥을 자주 먹여 주시던 선생님을 언젠가 한 번 찾어뵈어야 하는데,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신세이니 감히 스승의 날을 들먹일 처지도 아니다. 세상 살면서 시간 있으면 돈없고 여유돈 있을땐 바쁘고 이래 저래 옛날 선생님 찾아보는 일이 미루어진 변명이다.
시골에서 묵묵히 아이들을 가르치시던 선생님들 오늘날 말많은 '촌지봉투'는 생각도 못하시고 기껏 시골 5일 장에서 학부형이라도 만나면 '국밥 한 그릇'이나 '막걸리 한 사발' 대접받으시면 기분좋아하시던 선생님들 그리고 어쩌다 학부모님이 오셔 계란꾸러미를 선물이라도 드리면 거절하시다 황송해 하시며 받으시고 어쩔 줄을 모르시던 선생님..... 모두 어릴적 나의 눈에 비친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중.고등 시절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더 가르키기를 안달하시면서 채찍질 하시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오늘날 '선생님도 근로자로 인정하라'는 어느 교원단체의 주장도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도 근로자로 인정하라'는 등 모두 산업사회의 산물이 아닌가? 경제논리로 이야기 하면 당연히 근로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댓가를 받으니 맞는 말인지 모른다.
선생님의 '매'는 당연히 '사랑의 매'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 심하게 하시는 선생님도 계셨던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그때는 모두들 큰 반항없이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들은 내자식 잘 봐달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자식 잘 돌봐 주시는데 대한 감사의 표시를 어떻게 할까를 걱정하는 분이 대부분이었던 것같다.
학년말이 되어 선생님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식을 맡아주셨던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려해도 교육청에 신고하는 절차를 거치고도 그 뜻을 전하지 못한 기사를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을 때 한국에 사는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스승의 날에는 휴교를 하는 한국의 교육현장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경제논리를 우선하는 것이지만 모든 것을 경제논리라는 잣대로 판단을 내리고 대학이 돈만을 추구하기에 많은 재정을 확보하는 기업의CEO형이라야 유능한 총장임을 나타내는 기준이고 순수한 상아탑의 이념을 잊은지는 오래된 듯 하다.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대학이 싫어서 떠난다는 어느 용기있는 학생이야기가 언론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다. 상아탑이 취업할 때까지 졸업을 미루어'취업대기소'로 변하고 있기도 하다.
'교장 공모제'라는 것도 내가 보기에는 모든 것을 우수한 실적을 나타내는 결과를 중시하는 풍조에서 발상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를 중요시하면서도 그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사람을 배제하고 공모제를 통하여 채용한다는 것이 참신한 생각을 하게 하는 등 또 다른 좋은 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흔한 예로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고 정서적 안정을 주는데는 한계가 있듯이 한가지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한가지 잃는 것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 모든 일이 양지와 음지 항상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그 비교우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다고 해서 그에 비례하여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곳곳에서 보게된다.
당장 우리의 현실을 보자면 경제적으로 3~40년 전보다 물질적 성장이 몇 배를 이루었는가? 그렇다고 우리가 물질적 풍요을 누리는 그 경제적 성장 만큼이나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시에는 의.식.주의 해결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황금만능주의'와 '인간성 상실과 경쟁주의' 사회와 교육현장에서 나타나는 '건전한 인격체 육성' 실패를 단순히 산업화의 그늘로만 치부하기엔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언젠가 넋두리를 한 기억이 있지만, 어느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예를 들어 이야기한 일이 있다. 한 교실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과 또는 상장을 받는 학생가운데 예(禮)를 표하며 받는 학생이 한 두명 정도밖에 안된다는 목격담..... 기본적 예의를 표할 줄 모르는 것이 현실이고 선생님을 폭행범으로 고발하는 사건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스승의 날에 서글픈 생각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무슨 날이라 이름 붙여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이름하여 행사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갖게 하는냐하는 근본적 대책이 요구된다고 본다. 빚내어 커다란 청사나 짓고 무슨 무슨 행사를 벌여 큰 업적이나 남긴 듯 잔치를 벌이는 행태는 고쳐져야 한다. 늦기전에 예절과 인간성을 회복하는 풍토를 만들기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휴교를 하는 스승의 날에 학교와 가정에서 다같이 바른 교육이 어떤 것인가를 모두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얼마 안있어 기초단체장, 지방 자치단체장,교육감 선거로 온통 난리가 나고 있다. 자신이 당선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고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식이다. 자신의 권세와 부를 채우기 위해 당선을 노리는 이를 잘 걸러내고, 제발 투표할 때는 어떤 사람이 국민들을, 지역민들을 주인으로 대하며 진정으로 위할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인가를 잘 가려야 할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바른 교육을 통하여 돈 잘 벌고 공부 잘 하고 출세 많이하는 인간성이 상실된 경쟁우위의 인간보다 이런 선거를 통하여 진정한 민주적 일꾼을 뽑을 줄 아는 소위 '전인교육', 즉 진정으로 시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걸러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사람을 길러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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