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 도로에서 운전을 할 때 다른 차가 신호도 없이 끼어들거나 위협적인 운전으로 지날 때 나는 어떻게든 그 운전자에게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하려고 애를 썼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고 지금도 완전히 고쳐졌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당시의 내 마음은 엄청난 정신적 압박감과 불쾌함을 이겨내기가 어려웠던 것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연연하면서 산다는 것이 어리석고 무가치하고 자신의 생명까지 던질 정도의 것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가을에 동백나무 씨앗을 받아 두었다 다 올해 봄에 혹시나 하고 땅에 묻어 두었었는데,
마침내 싹을 틔어내고 있다.
이른 봄에 내가 땅에 묻었던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일을 겪으면서 그 순간을 넘기고 나면 자신이 생각해 봐도 정말 하찮은 일로 자신을 괴롭히고 타인은 물론 자신의 생명까지도 담보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번씩 부인과 다툼을 가지면서 산다고 본다. 그래서 사소한 언쟁이 대부분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경우 열에 아홉 번 정도는 그 발단이 극히 사소한 것에서 출발했던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부부싸움의 출발점은 아주 작고 하찮은 것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이란 만물 중 영장 동물이라 고 하지만 지극히 어리석다는 것을 일찍 깨닫는 것이 자신에게 편하고 다른 사람에게 조차도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 성향이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자신은 물론 함께하는 사람들 조차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고 좋게 말해서 내공이 쌓여간다고나 할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되고 살다 보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성향으로 변한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그때 그때 지적해서 고쳐지면 좋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반발을 불러일으키어 스스로 깨달아 자신의 잘못됨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소한 것일수록 한 번 더 생각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 현명한 수단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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