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남들이 이루기 어려운 일을 성취한 사람을 일러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얘기한다. 개천이란 넓고 긴 강이 아니라 그저 조그만 동네 앞을 흐르는 개울 정도를 이르는 것이며 용(龍)은 우리 상상 세계에서나 있는 동물이지만 세상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출세한 사람 요즘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주목받는 사람 정도라고 규정한다면 어떤 사람이 해당된다고 볼 것인지는 각자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또 시대마다 다르다고 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런 환경이나 제도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흔하고 가까운 예를 든다면 법학대학원이나 의학전문대학원 코스를 이야기한다. 이 두 가지 예는 아마도 일반적으로 서민 가정에서는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을 하기가 어려운 점일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 대학마다 지금은 다시 예전으로 환원되는 모양이다.
사실 오늘날 사회가 절대적 공산주의 사회나 원시 공동사회가 아니고 개방적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개천이라는 의미는 다소 희석되었다 그러나 계층이 있는 것도 인정해야겠지만 근원적으로 자신의 노력에 따라 자기가 성취하려는 의지와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보인다. 그만큼 사회가 개방되고 상대적 우월성은 있지만 평균적 삶의 질이 높아진 현실은 인정해야 한다. 어떻튼 오늘날 사회는 절대적 평등이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속담이 생긴 역사적 배경이라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분명하던 시대 예를 들면 조선시대쯤으로 거슬러 생각해 본다면 과거제도를 통하여 관리를 뽑아 등용하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싶다. 당시에도 물론 과거를 볼 수 있는 신분이 제한적이었던 점도 있었지만 일단 과거라는 제도권 안에서 본다면 신분 상승의 기회를 그것을 통해 부여했던 것임에는 분명하다
당시에는 일단 통로가 한정되어있었던 것이지만 오늘날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는 의미는 개천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고 용이라는 의미도 각기 그 분야에서 우월한 위치를 확보한다면 그 또한 용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특정한 직업군에 한정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천'이라는 의미와 '용'이라는 의미를 한정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든 자기만족을 찾아 행복한 삶을 펼친다면 곧 인생을 헛되이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대부분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군에서 자신의 영혼 같은 소중한 가치를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행태를 볼 때면 굳이 상상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용'이라고 생각할 필요를 전혀 느낄 필요가 없다. 또한 자신이 처한 환경을 굳이 하잘 것 없는 개천으로 단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어디가 '개천'이며 과연 '용'은 존재하는가?
'내 느낌, 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비이락(烏飛梨落) (0) | 2013.09.15 |
---|---|
왜 한자 교육이 필요할까? (0) | 2013.07.28 |
우리는 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려고 할까 (0) | 2013.06.26 |
원칙이 지켜지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희망한다. (0) | 2013.06.09 |
우리는 '왜(why)?'라는 질문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0) | 2013.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