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나의 이야기

벌초를 다녀오며

거연천석 2011. 9. 8. 19:31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해마다 해 오는 산소 벌초지만 올해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늦은 봄에 잡초를 없애기 위해 제초작업을 위해 한 번 다녀온 이후 처음이다. 그래서 추석이 오기전 보통 절기가 처서(處暑)를 지나면 모든 식물의 성장이 멈춘다는 이유로 음력 팔월 초순에 대개 벌초를 하는 것이다.

 

 해다마 벌초를 하는 것이 도회지에 살면서 한 번씩 가게되면 시간을 내야 하고 경비 또한 부담하게 된다. 더구나 힘든 노동을 해온 이력이 그다지 없으므로 일상속에서 운동을 하고 있어도 벌초기를 가동하는 데는 힘이드는 것도 사실이다. 50,000원 정도 부담하면 농협같은 데에 의뢰하면 사람을 고용하여 벌초를 대행해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형과 직접 하는 이유는 기왕에 산소를 마련해 두었으니 한 번이라도 직접가서 살펴보고 벌초를 하는 것이 마음이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직장 생활을 하는 조카를 기다릴 수 없고 차량을 동원하여 군입대를 앞둔 막둥이도 이번에 참여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비용면에서는 우선 차량에 기름값이 40,000원 정도에다 세 사람이 동원되었고 점심값이 들고 운전에다 수고하는 것을 경비로 환산한다면 앞서 얘기한 대행을 시키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수 있음은 당연하다. 앞으로 우리 세대가 묘지문화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크게 문제가 된다고 늘 얘기하면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면 우선 장례문화에서 화장장 설치문제 즉 화장장을 많이 만든는 것부터 '님비(not in my back yard)현상'으로 난관에 부닥치고, 막상 자신이 죽음에 임박하면 화장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음을 자주 경험한다. 앞으로는 설사 묘지를 마련하여  장례를 치룬 후에 후손으로써 산소관리가 어려워 질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면 제대로 조상을 받들지도 못하면서 좁은 국토에 굳이 산소를 마련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안동 독립운동 기념관은 안동시 임하면 내앞(川前里)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 성씨 중에 의성김씨가 유명한 문벌이기도 하지만 특히 안동지방에서는 이곳 임하면 천전리에 살고

있는 분들을 따로 '내앞 김씨'로 일컫기도 한다

<학봉 김성일 선생 종택이 자리잡고 있는 마을>

 우리집 막둥이는 생전 처음 할아버니 할머니 산소 벌초에 참여하였고, 자신의 애비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위치를  설명해 준 기회가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앞(川前里)에 정차하여 안동 독립운동 기념관을 살펴보고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선생의 종택을 같이 보았다. 고향을 내왕하면서 항상 지나쳐 다닌 내앞(川前)동네지만 이곳 또한 좋은 자리에 터잡고 있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내앞 마을에서 반변천 건너편에 자리잡은 '백운정'>

 

 안동에서 학창시절 가끔 소풍을 간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 반변천 가에 솔숲이 좋아 소풍장소로 자주 이용된 곳이기도 하다.

 백운정을 바라보면서 고교시절 동창 학우 중에 어느 여름날  백운정 아래 소에서 목욕하다 아깝게 하늘나라로 간 일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