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작곡가 박춘석 님을 잘 모른다. 전후 세대인 본인 어릴 적 '60년대부터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끔 흥얼거린 노래 가운데 그분의 노래가 많다는 점, 가끔 언론이나 레코드 판 가게를 지날 때 재킷에 가수와 찍은 사진 속의 모습은 독특한 머리 스타일 그리고 테가 굵고 선글라스에 가까운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 가지 더 기억에 남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인가 아무튼 우리나라에 국산 라디오가 나오기 전인 것 같은데 가형께서 처음 교사 발령을 받으면서 집에 외제 라디오를 사 오셨는데 당시에 내가 자란 시골 마을에 유일한 라디오였다. 그런데 그 라디오 연속극 '섬마을 선생님'을 사랑방에서 열심히 들은 기억이 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많이도 따라 불렀던 노래인데 그분이 돌아 가신지 며칠 뒤 가수분의 회고 자리에서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한 때는 금지곡이었다는 것이다.
작사자 작곡가라는 분들은 가수를 매개로 하여 대중과 만나는 특성으로 항상 무대 뒤편에 서있는 분이다. 그래서 일반 대중과는 직접적인 접촉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대중가요 작사.작곡자는 대중들이 잘 알지 못하는 난해한 시를 쓰는 시인과는 달리 서민들의 당시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당신의 경우는 작사까지 함께한 것이 많아서 천재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 노랫말에 인생의 애환이 담겨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그분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유명 가수를 통하여 보여준 그분의 예술세계는 놀랍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그는 참으로 예술가로 살다 가셨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독신으로 살면서 오직 작사 작곡만을 위해서 살아온 것 같았다. 모두가 그분이 만들어준 노래를 불러 준 가수들의 얘기를 부분적으로 들은 수준의 것들이지만 종합해 보면.....
대중가요는 세대별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소 갈리기는 하지만 우리의 정서 속에 면면이 흐르는 것은 비슷하기 때문에 항상 공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 가운데 어떤 것은 거의 어느 명곡 못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많다.
우리가 늘 공기와 물 햇빛 속에서 살면서 그 고마움을 모르고 부모님이 돌아 가시고 나서야 불효했던 기억을 떠올리듯이 곁에 있을 때는 항상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 듯하다.
언듯 떠오르는 곡 가운데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초우' '비내리는 호남선' 우리 자형이 장가 와서 부르던 '마포 종점' 선생님한테 시집간 누나가 즐겨 부르던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낭주골 처녀' '동백 아가씨' '기러기 아빠' '가슴 아프게'...
형님들이 분위기 있는 노래를 할 때면 '안다성'님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 등 등 어느 가곡 못지않은 가사들, 멜로디....
시골에서 자랄 적 형님들이 잔치 끝에 모여서 놀 때 상다리 두드리며 부르던 노래가 대부분 박춘석 님이 만드신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모두가 그 노래가 유행할 당시에는 어느 분의 작품인지 모르고 다만 가수만을 기억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신문에 나온 통계를 보니 2,700곡이라고 한다. 곡 수도 많기도 하거니와 대중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은 곡도 많아서 그분은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참으로 많은 공헌을 하신 것이다.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들은 얘기 가운데 하나 "재주 있는 사람은 가난하거나 불우한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 작가나 예술가는 항상 가난하거나 불우한 경우가 많았듯이 박춘석 님의 서거 소식을 접하면서 언뜻 생각나는 말이었다. 어쭙잖은 사회학적 해석을 한다면 외골수 인생이 대개 예능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성향이랄까?
그렇게 오래 병석에서 고생하신 줄 조차 모르는 사람 가운데는 그분의 노래를 한 두 곡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분이 없었다면 우리 대중들의 정서를 어찌 표출하면서 지냈을까를 생각하면 한 번쯤 그분에 대한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좀 더 잘 살고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면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러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분이 시대별로 우리의 정서를 대변해 주고 달래 준 것을 생각한다면 충분한 자격이 있을 것이다.
무슨 문화훈장을 받기는 한 모양인데.....
개인적으로 늦었지만 박춘석 님의 영전에 꽃을 바칩니다.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 불매향)
매화는 일생 춥고 배고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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