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고령은 국도33호선이다 고령읍을 지나 합천 방면으로 가면 쌍림면 소재지가 나오고 조금지나 귀원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는 거창 묘산으로 가는 국도 26호선과 진주 합천으로 가는 33호선이 갈라지는 데 점필재 선생 종택이 있는 개실마을은 합천 방면으로 가는 33호선 도로가에 접해있다. 행정적 명칭은 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개실 마을
개실마을은 가곡(佳谷)마을 즉 '아름다운 고을'이 오늘날 개실마을로 불리어진 것으로 보인다.
잠시 비석을 읽어보니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조선 중엽 무오사화로 점필재 선생이 화를 입으니 그 후손들이 이곳 저곳 떠돌다 정착하게 된 곳이 본래 고령군 하동면 지역이었다고 한다.
내가 돌아 본 바로는 마치 성주 한개마을과 같이 아담한 뒷산을 배경으로 남향 마을 앞에는 조그만 내(川)가 흐르는 대표적 背山臨水의 마을이다.
명문가는 또한 좋은 자리에 터를 잡는 모양이다.
점필재 선생은 본관이 善山(구.一善) 자는 계온 또는 효관, 호는 점필재 시호는 문충이다. 1431년(세종 13년)에 밀양 대동리에서 출생. 아버지 김숙자로부터 길재의 성리학을 이어받아 훗날 영남학파의 종조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어릴적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보았던 분향소의 모습이 있었다. 종택을 방문하는 유림들이 분향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종택에는 종부님께서 팔순을 넘기셔 연로하신 시조모님 병 수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종택의 장독대가 정갈하게 자리잡고 있다.
점필재 선생의 사당
사당쪽에서 내려다 본 종택
마당 옆에는 오래전부터 사용하였던 우물이 보인다. 바로 옆에는 상수도가 자리잡고 있다.
아래 사진들은 서림각 뜰에 방문자들이 볼 수 있도록 점필재 선생의 생애에 대하여 설명해 놓은 것들입니다
서림각 뜰에서 바라보니 사당이 살짝 보인다.
종택 안채 근래에 서까래를 교체한 것이 드러난다.
오늘날 남아있는 고택들은 후손들이 그래도 여력이 있으면 이렇게 보수도 하고 지켜가려고 노력하지만 방치되어 가는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사라지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못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요란한 건물을 지어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여 빚만 남기느니,
이런 우리의 문화 유산들을 잘 지켜 관광자원화 하는 것도 좋은 업적을 남기는 일이기도 한데,
후임자와 지역민들에게 빚만 덩그러이 남기고
떠나가는 꼴이란....
'죽부인'이 걸려있는 모습이....
이 비석은 합천에서 고령을 거쳐 서울로 향하는 진상품을 서로 인수인계한 곳에 세운 것으로 합천 군수와 고령현감이 진상품의 인수인계 장소를 확정하고 서로 잊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연재'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과업을 기리기 위해 지방유림들이 건립한 강학지소이다. 종택에서 남서쪽으로 약100미터 거리를 두고 있다. 점필재의 15세손 김창현 대에 건립되었다. 상량문에는 1886년으로 기록
현대화된 화장실
선산(일선)김씨 사적비
개실마을은 '농촌 체험 마을'로 정하여 우리의 것을 지켜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 논에는 모심기를 끝내 잘 자라고 있다.
'신변잡기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탁본 전시회 (0) | 2011.07.01 |
---|---|
죽유 오운 종택, 김면 장군과 도암서원 (0) | 2011.06.22 |
'대가야 박물관'에서 만난 '점필재 김종직' (0) | 2011.06.20 |
자전거를 자동차에 싣고 '대가야' 문화 유적을 찾아서 (0) | 2011.06.19 |
우리 집안에 가까워진 여름 (0) | 2011.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