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ding flow(몰입의 즐거움)
by Mihaly Csikszentmihalyi
관심을 모으고 행동을 일으키는 몰입은 정신력의 원천이다.
다른 형태의 힘과 마찬가지로 정신력도 중립적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건설적 목적으로도 파괴적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불은 몸을 녹여 추위를 견디는 데도 쓰이지만 집을 태워 없애기도 한다. 전기와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가용에너지가 있다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에너지를 슬기롭게 쓰는 방법도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같은 이치로 즐거움을 주는 목표를 찾아 나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세상 전체의 무질서를 줄일 수 있는 목표를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목표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무질서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예로부터 종교의 몫이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죄'로 보았다. 죄는 개인과 공동체, 또는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 시키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사회가 도태당하지 않기위해서는 사람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목표를 내걸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의 힘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모세, 모하메드 같은 특출한 인물의 예지, 환영, 말씀을 모은 선악의 판단 지침이었다. 이러한 목표들을 속세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정당화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가 한 행위의 결과라는 것이 고작해야 이 세상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난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쾌락과 물질적 이익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을 모를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만 좇아서 행동한다면 공동체는 와해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이기심에 눈이 먼 사람의 말로를 보여주는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했다. 내세에서 비천한 동물로 태어난다든가 까맣게 잊혀진다든가 지옥의 불길로 떨어진다든다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