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픈 글귀

뺄셈 인생2

거연천석 2016. 7. 23. 22:05



<믿음이 준 생명>

 남자는 사막을 헤매는 중이었다. 수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속은 비어 있었다. 꼬박 이틀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려던 찰나. 멀리 집 한 채가 사막의 바람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서 겨우 그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절망에 빠졌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이었던 것이다. 낙담해서 집안을 둘러보는데, 놀랍게도 구석에 펌프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재빨리 펌프 곁으로 다가섰다. 손잡이를 잡고 미친듯이 펌프질을 해댔지만 물은 한 방울도 올라오지 않았다. 지하수가 말라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집이 나의 무덤이 되겠구나.'

한참 동안 누워 있다가 눈을 뜨니, 그가 지나쳤던 입구 쪽 바닥에 물통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틀림없이 물이 들어 있었다. 그는 정신없이 기어가서 물통을 들고 확인했다.

'이제 살았구나.'

그런데 물통에는 빛바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종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물을 얻고 싶으면 먼저 펌프에 이 마중물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펌프질을 해보세요. 떠나기 전에는 반드시 이 통에 물을 다시 채워 놓으세요. 다음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마개를 열자 가득 들어 있는 물이 그를 유혹했다.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 물로 일단 목을 축이고, 남은 물은 내 수통에 넣어서 떠나면 이 근처 어딘가의 마을에 도착할 수는 있을 텐데. 그렇게 할까?' 더구나 이 쪽지의 내용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막상 모른척 하려니 마음이 찜찜했다. 그래도 앞서 다녀간 사람이 베푼 호의인데.

'만일 펌프에 물통의 물을 다 부었는데도 물이 올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어쩌면 이 물이 나를 살아서 돌아가게 해줄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는데, 이것마저 잃어버린다면 여기에서 꼼짝없이 죽게 되는 것이 아닌가?'

 물통을 든 채. 남자는 한동안 서 있었다.

'몇 모금만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민 끝에 그는 결국 쪽지를 남긴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보기로 했다. 통안의 물을 펌프에 전부 부었다. 그런 다음 간절한 마음으로 펌프의 손잡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말 펌프 꼭지에서 조르르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맑고 시원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남자는 물을 실컷 마신 뒤 지니고 다니는 수통에도 가득 채웠다. 그런 다음 물통에 다시 물을 채워 마개를 막고 입구에 놓았다.

 마음속의 불신을 버리고 자신은 물론, 후에 찾아오게 될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까지 살리게 된 것이다. 물통에 물을 받아 놓음으로써 남자의 생명을 구해준 사람 역시, 앞서 다녀간 사람의 호의 덕분에 소중한 생명의 물을 얻었을 것이다.

 의심하는 마음을 빼낸 자리에는 믿음이 자라난다. 그 믿음이 다른 이에 대한 호의를 낳고, 꼬리물기처럼 이어져 여러 사람을 살려냈다. 그는 집을 나서려다 다시 돌아와 빛바랜 종이 위에 이렇게 덧붙여 썼다.

'정말입니다. 한 번 믿어보세요.'


버리면 행복해지는 사소한 생각들

무무(木木) 지음/오수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