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솔밭회 친구들 단톡방으로 울산에 사는 친구가 아들 장가를 보내게 되었다는 모마일 첩첩장이 왔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왜냐하면 3월 경에 한 친구가 교수로서 정년퇴직을 하면서 자녀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주한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코로나로 모임을 자제하고 있던 가운데 적당한 식당을 골라 대구에서 만났을 때 하던 이야기가 생각나서이다.
그의 인생 역정을 잠시 살펴보면 부산에서 모 철강회사에 다니던 시절 아들과 남편을 두고 지병으로 고생하던 아내는 먼저 하늘나라로 가고 아들과 친구는 후에 다행히 현재의 좋은 아내를 맞이하여 새로운 삶을 살다 1997년 IMF사태를 맞이 할 때 다니던 회사는 문을 닫게 되었으며 그 후 개인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사업을 접게 되었고, 다행히 철강회사에 몸 담았을 당시에 철강 사업을 시작했던 다른 친구의 인연으로 다시 일자리를 잡아 약 2년 전 퇴직할 때까지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사이에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 남매를 두게 되었고 그 가운데 딸은 교육대학을 졸업하여 사는 지역인 울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아들은 대구에 있는 모 의과대학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봄에 만났을 당시 소주잔을 나누며 그의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 대한 얘기를 하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에 더욱 반갑게 느꼈던 것이다. 나는 우선 날짜를 살펴보니 이 번 학기가 끝나는 12월 18일(토)로 되어있어서 별문제 없이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친구들과 단톡방을 통해 의논을 하여 사정이 허락하는 친구들은 참석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코로나19 사태가 변이 바이러스로 다시 강화된 날이지만 우선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사정상 참석치 못하지만 대구에서 나를 포함하여 동부인한 친구 1명이 참석하고 안동에서 2명, 부산에서 동부인한 친구 1명, 모두 7명이 참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장소는 진주 공설 운동장에 있는 MBC컨베션이란다 애초에 내가 대구에서 자동차를 동원하여 동승자를 물색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마침 안동에서 참석하는 친구가 어차피 대구를 경유하니 자신의 차에 동승하기를 권유하는 바람에 그러기로 약속하고 아침 일찍 만날 약속 장소로 지상철 3호선과 2호선 지하철을 환승하면서 약속 시간을 잘 지키기 위해 서둘렀다
약속 지점 근처에 이르러 안동에서 오는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내 것은 집에서 준비해 간 커피가 있으니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 2캔을 사고 기다렸다. 정확하게 시간을 잘 맞춰 반갑게 합석하면서 진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속에 무사히 잘 도착하여 공설 운동장 안에 마련된 예식장에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의 엄격한 절차를 밟으며 입장하였다. 3팀 중에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하여 혼주와 반갑고도 진심 어린 축하를 하였다. 사실 참석을 결정할 때 우려했던 것은 우리들이 모두 2차 백신 접종은 마친 상태지만 마음 한 구석 걱정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던 것이다
예식은 특별한 주례 없이 신부 혼주의 덕담과 요즘 젊은이들의 개성 있는 결혼식으로 끝나고 지정된 식사와 오랜만에 약간의 술을 곁들인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코로나 방역의 걱정을 떨치고 달려간 친구들을 위해 신랑의 혼주인 친구가 차비와 별도의 회식비를 주어서 '진주 촉석루'에 들러서 임진왜란 당시 '논개'가 왜장과 함께 뛰어든 곳과 논개 사당을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장어 요리 맛집에서 2차 피로연까지 하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 모두 촉석루는 잘 알고 있어서 대충 둘러보는 것으로 끝내고 돌아오는 시간 조절을 위해 애썼던 것이다.
친구들이 모두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었던 것은 혼주인 친구의 마음속 깊은 곳의 근심이 다소 해소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하면서도 반듯하게 자라서 어여쁜 색시를 얻어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아비로서는 한 가지 근심은 덜었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늙은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혀로 핥으면 휘청거리며 걸음마를 시작하면 어미로서 갸륵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듯이 어버이로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세상을 헤쳐나가기를 애타게 바라는 마음이리라 이를 두고 엣말에 "老牛舐犢之愛(노우지독지애)"라고 일컬었다. 친구로서 가족들 간의 깊은 내용을 다만 짐작할 뿐이지만 재혼한 아비로서 많은 걱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친구들 모두 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고 신랑인 친구 아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면서 돌아왔다.
그날 나를 동승시키고 운전까지 수고한 친구들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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