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담양(潭陽)에 가다

거연천석 2024. 6. 23. 17:46

(여행계획표)

 

 담양을 가기로 한 약속을 오랜 기다림 속에 1박 2일 예정으로  2024년 6월 15일 드디어 실행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오랜 기다림이었지만 실행 과정은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나의 옆지기 휴무일에 맞춰준 친구들의 마음이 고맙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년 반 동안 별다른 움직임도 없던 시기, 간간히 자전거 라이딩을 하면서 언젠가 담양을 가기로 계획을 잡았지만, 5명의 개인적 일정과 맞추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5명의 주인공들의 옆지기와 동행으로 "자연 휴양림(숲나들이)" 숙박 예약은 많은 경쟁을 뚫어야 했다. 특히 이웃 화순군에 자리하고 있는 "자연 휴양림(일명 숲 돌이)" 예약은 경험자인 친구 가원 내외분이 아니었으면 모처럼의 계획은 실행하기 어려웠을 것인데, 이 기회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화순 적벽"을 버스 투어로 둘러보게 되었음에 더욱 감사할 따름이다.

 다행히 경험 많은 친구와 그의  옆지기, '옆지기'라는 명칭은 내가 친구들의 부인을 지칭할 때 붙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2년 반에 걸쳐, 방통대 석사과정에서 학위를 취득하는 조그만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친구들과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자전거 타는 것을 하면서 만남을 유지했다. 친구들 모두 경북 안동에서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대학도 같은 대구지역에서 다녔으며 졸업 후 사회생활도 같은 지역에서 하였다. 10대의 학우들이 50년을 훌쩍 넘게 함께 하였으니 옆지기들도 모두 친숙한 관계다. 그래서 5명의 자전거 라이딩을 위해 조금씩 회비가 적립되어 이번에 비록 짧은 여행이지만 승용차를 이용하여 부부 동반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담양(潭陽)은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맑은 물이 넘쳐흐르니 담()이요, 따뜻한 햇살이 온 누리를 비추니 양()이다. 노령산맥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고 곳곳에 담()을 만들어 너른 들과 대숲에 물을 공급한다. 위도가 남쪽이어서 볕이 따사롭다. 백제 때는 추자혜(秋子兮)라 불렀고, 통일신라 때는 추성(秋成)이라고 하다가 고려 성종(995) 때는(995) 담주(潭州)로 개칭했다. 고려 현종 때인 1018년에 비로소 담양이 됐다. 그래서 천년 담양문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담양 10경은 소쇄원(瀟灑園), 죽녹원(竹綠苑), 추월산(秋月山), 가마골 용소(龍沼), 용흥사(龍興寺) 계곡(溪谷), 관방제림(官防堤林), 금성산성(金城山城), 메타세쿼이아 길, 병풍산(屛風山), 삼인산(三人山)을 말한다.

 내가 탄 친구의 차량을 죽녹원 근처주차장에 주차하고 먼저 죽녹원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을 만났다. 에어컨이 문제가 생겨서 담양에 도착할 동안 고생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니, 우선 자동차 정비소를 찾아 먼저 점검을 받고 수리를 하고 예약한 점심(한우 대통 정식과 떡갈비)을 먹기로 했다. 4km 정도 떨어진 자동차 정비소를 찾아 점검을 받고 에어컨(airconditioner) 냉매를 보충하니 정상으로 작동되었다. 자동차 수리를 하고 오는 동안에도 일행들은 손님이 너무 많아서 한 참을 기다린 후에야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담양(潭陽)은 한자로 ‘못 담’ 자와‘볕 양’ 자다. 우선 담양이라는 지명을 생각하면 학창 시절 대나무로 갖가지 생활에 필요한 용기를 만들어서 쓰임에 따라 직접 사용하거나 판매까지 하여 널리 알려져 유명한 곳으로 기억한다. 죽녹원을 돌아보고 또한 죽세품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과연 담양은 대나무의 본 고장임을 알 수 있었으며, 대나무에서 추출한 액으로 10명 동행객 들은 1인당 3,000원을 지불하고 족욕까지 단체로 하였다.

 담양은 과연 대나무가 잘 자라는 지역임을 절감하였다. 내가 여태껏 봐온 대나무와는 달리 굵고 하늘을 찌를 듯 키가 크고 마치 하늘을 덮고 있는 형상이었다. 차량 정비로 시간이 지체되어 계획된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하였다. 화순에 자리하고 있는 숙소의 체크인(check in) 시간(19:00)을 더 늦출 수 없어서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면 우선 대나무는 풀일까? 나무일까? 대나무는 오래 살고 줄기가 단단해 얼핏 나무로 보이지만, 부피 생장을 하지 않고 속이 비어 있다는 점에서 풀에 가깝다. 대나무는 생장하기 시작한 후 수십 일 동안 자라고 더 이상 굵어지지 않고 굳어지기만 한다. 풀줄기가 딱딱해지는 것이다. 우리말 사전에는 를 일상적으로 이른 말. ‘의 줄기가 단단하고 긴 것을 나무로 보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대나무는 볏과 대나무 아과에 속하는 상록성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대의 종류를 잠시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재배가 장려되고 있는 종류는 왕대(苦竹),솜대(淡竹), 맹종죽(孟宗竹) 3종이며 성장 기간은 왕대 20~40, 솜대 25~45일, 맹종죽대 25~45일, 30~50일 만에 다 자라고 더 이상 굵어지지 않고 굳어진다고 한다. 인류가 대나무를 이용한 역사는 대단히 오래되어 고대사회의 중요한 전쟁 무기였던 활, 화살 및 창이 모두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산울타리 또는 주민들의 방호용으로도 재배되어 왔다. , ()의 붓대가 바로 대나무이며, 퉁소, 피리, 대금 등의 악기도 대나무로 만든다. 다소 낯선 이름의 '맹족죽'은 요리에서 죽순을 이용하기 위한 종류를 말한단다.

 깃대나 조릿대로는 조리를 만들고, 이대(箭竹)로는 화살, 담뱃대, 낚싯대, 부채 등을 만들며, 왕대나 솜대로는 건축자재뿐 아니라 가구. 어구. 장대. 의자. 바구니. . 빗자루. 완구 등 많은 일용품을 제조한다, 그리고 땅속줄기로는 단장이나 우산대를 만들며, 대의 잎이나 대껍질은 식료품의 포장용으로 쓰이는 등 대나무의 이용도는 참으로 다양하다.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에 나오는 나모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곳 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니 뷔연ᆞᄂᆞ다/뎌러코/ 사시에 프로니 그를 됴하 하노라.”라는.”  시조는 이러한 대의 성격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밭(竹林)은 문학작품 속에 흔히 은거지(隱居地)’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화순 백아산 자연휴양림에 예약된 소나무 1호, 참나무 2호에 겨우 시간 맞춰 무사히 입소 절차를 마치고 남. 여 각 호실에 짐을 풀었다. 여자 숙소인 소나무 1호에서 준비한 음식과 음료 그리고 약간의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고 지나온 여정에서 겪은 여행담으로 얘기 꽃을 피웠다. 백아산에 자리한 자연휴양림은 아침에 일찍 잠이 깨어 둘러보니 청정한 산림 속에서 휴식을 마음껏 편안히 보낼 수 있는 곳으로 생각되었다. 이른 아침 일찍 잠을 깬 친구와 돌아보던 중 새로운 숙소 증축공사 할 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담양 여행 2일 차

  아침 식사 전. 후 가벼운 산책을 한 후 10:00쯤 체크아웃(check out) '화순 이서 커뮤니티' 주차장 근처 우체국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시켰다. 점심은 뽕잎 칼국수로 주문하고 화순 적벽 탐방 셔틀버스 축발시간에 맞추기로 한 후에 수령 500년을 자랑하는 '화순 이서리 은행나무'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12:00 경 점심을 주문한 식당에서 뽕잎을 이용한 수제비 칼국수와 부침개를 모두들 맛있게 먹은 후 '적벽' 투어 셔틀버스 티켓을 받고 버스에 올랐다.

 13시에 출발 해설사, 안전요원과 동행하면서 1979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항리 일대에 걸쳐 있는 경승지를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 소개된 내용을 옮겨 본다. 중국 양자강 중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이름 붙여졌다. 동복천(同福川)의 상류인 창랑천(滄浪川) 유역과 무등산(無等山,1,187m)에서 발원한 영신천(靈神川)이 합류되어 태고의 절벽을 스치며, 강의 유역에는 크고 작은 수려한 절벽이 있다. 내 기억에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은 해설사의 창랑천 해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절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구절은 초사 (楚辭)에서 굴원(屈原)과 어부가 나눈 대화로 유명한 구절이다. 호남 지방의 감칠맛 나는 억양, 안전요원의 다소 거친듯한 어투지만, 사진 배경이 좋은 곳을 골라, 멋진 포즈를 요청하면서 10명의 동행인을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그 친절이 고맙고 안전하게 투어를 마친 데 대하여, 감사의 표시로 우리들 리더 가원(迦远)님이 음료수 한 박스를 드렸다. 

화순 적벽 앞 단체사진 *소동파의 적벽부에 한 구절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이 생각나는 사진*

 소쇄원 주인 양산보는 조선시대 개혁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스승 조광조의 죽음을 접하면서 벼슬길을 포기하고, 이곳 담양으로 내려와 우리나라 대표 정원으로 꼽히는 소쇄원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양산보는 하서 김인후와 친구이면서 그의 아들 양자징이 김인후의 딸과 혼인하였으니 사돈 관계이기도 하다. 소쇄원은 3대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알려지며 소쇄원 주인 양산보는 후손들이 주인 노릇을 하지 않도록 당부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사회에 환원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소쇄원에 자리하고 있는 제월. 광풍각에서 광풍, 제월의 명칭에 대한 유래를 잠깐 살펴보자. 중국의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물됨을 논하여, 胸懷灑落如光風霽月(흉회쇄락여광풍 제월) '가슴에 품은 뜻이 맑아서 청량한 바람과 같고 비 갠 뒤의 맑은 달과 같다'. 아마 양산보는 스승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갈 삶의 방향을 그렇게 잡고 살리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라고 하였으니, 양산보는 광풍제월을 가슴에 품고 덕을 쌓으며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소쇄원 주차장에서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먹었다. 귀환길은 대구 달서구민 4인, 수성구민 6인, 3대의 차량별로 각기 목적지를 입력하고 출발하여, 지리산 휴게소에서 잠시 남은 음식과 물을 분배하고 집을 향하여 달렸다. 모두 안전하게 귀가하여 다행스럽고 감사한다. 어렵게 이루어진 여행이었던 만큼 의미를 부여한다면, 현재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이고 있는 친구 옆지기에 대한 이해와 배려하는 마음을 서로 공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영 주차장에 대한 소견  (0) 2023.10.17
경주 돌아보기  (0) 2023.10.12
부끄러운 추억  (0) 2023.10.01
한 해를 마무리 하며  (0) 2021.12.31
나의 걷기에 대한 생각  (0) 202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