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한문 음미

악양루기(岳陽樓記) -범 중 엄(范仲淹)-

거연천석 2024. 8. 17. 19:23

 慶曆四年春에 騰子京謫守巴陵郡이라. 越明年에 政通人和하여 百廢俱興이라. 乃重修岳陽樓하여 增其舊制하고 刻唐賢今

 경력4년춘에 등자경적수파릉군이라. 월명년에 정통인화하여 백폐구흥이라.  내중수악양루하여 증기구제하고 각당현금

人詩賦于其上하고 屬予作文以記之라.

인시부우기강하고 속여작문이기지라.

 予觀夫邑陵勝狀이 在洞庭一湖라. 銜遠山하고 呑長江하여 浩浩蕩蕩하여 橫無際涯하니 朝暉夕陰이 氣象萬千이라. 此則

 여관부읍릉승장이 재동정일호라. 함원산하고 탄장강하여 호호탕탕하여 횡무제애하니 조휘석음이 기상만천이라. 차즉

岳陽樓之大觀也니 前人之述備矣라. 然則北通巫峽하고 南極瀟湘하여 遷客騷人이 多會于此라. 覽物之情이 得無異乎아?

악양루지대관야니 전인지술비의라. 연즉북통무협하고 남극소상하여 천객소인이 다회우차라. 남물지정이 득무이호아?

 若夫霪雨霖霏하여 連月不開면 陰風怒號하고 濁排浪空하여 日星隱曜하고 山岳潛形하니 商旅不行하고 檣傾楫槯요 薄暮

 약부음우림비하여 연월불개면 음풍노호하고 탁배랑공하여 일성은요하고 산악잠형하니 상여불행하고 장경집최요 박모

冥冥하여 虎嘯猿啼라.

명명하여 호소원제라.

登斯樓也면 則有去國懷鄕과 憂讒畏譏하여 滿目蕭然이 感極而悲者矣라. 至若春和景明하고 波瀾不驚하면 上下天光이 一

등사루야면 즉유거국회향과 우참외기하여 만목소연이 감극이비자의라. 지약춘화경명하고 파란불경하면 상하천광이 일

碧萬頃이라. 沙鷗翔集하고 錦鱗游泳이오 岸芷汀蘭은 郁郁靑靑이라. 而或長煙一空하고 皓月千里니 浮光躍金하고 靜影沈

벽만경이라. 사구상집하고 금린유영이오 안지정란은 욱욱청청이라. 이혹장연일공하고 호월천리니 부광약금하고 정영심

璧이라. 漁歌互答하니 此樂何極가?

벽이라. 어가호답하니 차락하극가?

 登斯樓也면 則有心曠神怡하여 寵辱俱忘하고 把酒臨風하여 其喜洋洋者矣라. 嗟夫라! 予嘗求古仁人之心이 或異二者之爲

 등사루야면 즉유삼광신이하여 총욕구망하고 파주임풍하여 기희양양자의라. 차부라! 여상구고인인지심이 혹이이자지위

니 何哉오? 不以物喜하여 不以己悲라. 居廟堂之高면 則憂其民하고 處江湖之遠이면 則憂其君이라. 是進亦憂요 退亦憂니

니 하재오? 불이물희하여 불이기비라. 거묘당지고면 즉우기민하고 처강호지원이면 즉우기군이라. 시진역우요 퇴역우니

然則何時而樂郁아? 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하고 後天下之樂而樂歟인져! 噫라! 微斯人이면 吾誰與歸리오?

연즉하시이락욱아? 기필왈선천하지우이우하고 후천하지지락악여인져! 희라! 미사인이면 오수여귀리오?

번역 해설 : - 김 학 주 -

 송(宋)나라 인종(仁宗) 경력(慶曆) 4년 봄, 등자경(騰子京)이 유배되어 파릉군(巴陵郡)의 태수가 되었다. 이듬해가 되자, 정치가 잘 행해져 인심이 화합하고, 그 전의 온갖 그릇된 일들이 모두 새로 잘 되었다.

 그러자, 그는 악양루(岳陽樓)를 중수하였는데, 옛규모를 더욱 늘리고 당대(唐代)의 뛰어난 문인들과 오늘날 사람들의 시(詩)와 부(賦)도 그 위에 새겨 넣었으며, 나에게는 문장을 써서 그 일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보기엔 파릉의 뛰어난 경치중 오로지 동정호(洞庭湖) 하나이다. 동정호는 먼 산을 머금고, 장강(長江)의 흐름을 삼키고 있는 듯 물경리 널리 넘실거리고 있으며, 그 너비는 남북으로 가로질러 끝이 없으며, 아침 햇살이 비칠 때나 어스름 저녁이 되면 기상(氣象)이 천태만상으로 별화한다. 이것이 바로 악양루에서 본 위대한 풍광으로서, 옛 사람들이 모두 상세히 기술하였다. 그런데 북쪽으로는 무협(巫峽)에까지 통해 있고 남쪽으로는 소수(瀟水)와 상수(湘水)에까지 이르고 있어 옛부터 유배된 사람들이나 시름에 적은 시인(詩人)들이 이곳에 많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경물(景物)을 보는 감정은 각기 다르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만약 장마비가 계속 내려 몇 달이고 개지 않으면 음산한 바람이 성난듯 불어와 흙탕물진 파도가 하늘에 치솟아 해와 별이 빛을 감추고, 여러 산들이 모습을 숨기며, 장사꾼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어지고, 배의 돛대가 기울어져 노가 부러지며, 어둘 녘 날이 컴컴하면 호랑이 울고 원숭이 울부짖는다.

 이 누각에 오르게 된다면, 멀리 서울[國都]를 떠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일고, 무고(誣告)를 당할까 모략(謀略)에 걸릴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듯한 정이 일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쓸하게 느껴질 터이니 감정이 격동하여 슬퍼질 것이다.

 봄 기운이 온화하고 경치가 청명하며, 파도가 잔잔할 때면, 하늘과 물이 모두 하늘빛으로 온통 푸르게 널리 펼쳐있게 된다. 물가에 갈매기떼 날아들고 아름다운 비단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며, 언덕 위에 궁궁이 풀, 물가에는 난초가 푸릇푸릇 향기로우며, 때로는 긴 안개가 하늘 가득히 퍼지고, 하얀 달빛이 천리 멀리까지 비쳐 달빛 받은 물결이 금빛으로 일렁거리고, 고요한 달그림자는 마치 구슬이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그 속에 어부들의 노랫소리가 오가니, 그 즐기는 마음에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이 누락에 오르면 마음이 넓어지고 정신이 편안해져서, 영광스런일, 욕된 일을 모드 잊고 술잔을 들고서 바람을 쐬게 될 것이니, 그 기쁨은 크고 또 클 것이다.

 아아! 나는 일찍부터 옛 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았었는데, 아마도 앞서 등 두 가지 예와는 다른 듯 하니 무엇 때문일까? 그들은 외부의 사물을 보고 기뻐하지는 않으며, 또 자신의 개인적인 일로 슬퍼하진 않기 때문이다.  

 조정의 높은 직위에 있으면 백성들을 걱정하고, 물러나서 멀리 강호(江湖)에 거처하게 되면 임금을 걱정했다. 그러나 조정에 나아가서도 걱정, 물러나서도 걱정이었으미 어느 때에나 즐거울 수 있었겠는가? 틀림없이 하는 말들은 "천하의 근심은 누구보다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한 뒤에 즐긴다." 라는 것일 것이다. 아아! 그와 같은 어진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누구를 본받고 의지하며 살아 갈 것인가!

해설 -김학주-

악양루(岳陽樓)는 호남성(湖南省) 악양현(岳陽縣)에 있는 누각으로, 중국 최대의 절승지인 동정호(洞庭湖)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누가 세웠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당(唐) 개원(開元) 4년 중서령(中書令) 장열(張說)이 이곳 태수로 부임해 오자, 날마다 재자(才子)들과 이 누각에 올라 시를 읊었다고 한다.

 등자경(騰子京)이 경력(慶曆) 5년, 이것을 수리하였고 범중엄(范仲淹)이 이 글을 지었으며, 소순흠(蘇舜欽)이 그 글을 쓰고, 소소(邵疎)가 전액(篆額)을 썼다. 당시 사람들이 이들 네 사람의 文章家와 名筆이 쓴 작품을 칭송하여 四絶이라 불렀다 한다.

 이 글은, 樓上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을 기술하고서,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쓸쓸하고 즐거운 것은 그 사람이 처해진 상황에 의한 것이라 서술한 다음 不以物喜, 不以己悲.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  이라 하여, 군자된 자의 마음가짐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