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느낌, 내 생각

나의 글쓰기에 대한 두 가지 생각

거연천석 2024. 9. 29. 20:39

  누군가가 나에게 글쓰기란 어떠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우선 두 가지가 떠오른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표현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이고, 다음은 어떤 수단으로 그것을 표현할까 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라는 한시를 처음 배우면서 느꼈던 감회를 잊을 수가 없다. 눈을 감고 암송하면,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여, 인적이 끊어지고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눈 덮인 강에서 홀로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쓴 노인이 낚시하는 풍경이 내 눈앞에 또렷이 그려짐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멋진 한 폭의 동양화가 내 눈앞에 펼쳐진 듯 표현하였을까? 그 무렵 나는 시()라는 개념도 모르던 시절이라 그저 멋지고 훌륭한 한시(漢詩)라고 막연하게 여겼다.

 글쓰기란 약속된 기호를 활자화한 것인데, 말하자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한 때 서예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은 한 획 한 획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나도록 해야 생동감이 있는 글씨가 된다는 것이다. 글자는 획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한 획이라도 사획(死劃)이 되면 생동감이 있는 글자가 될 수 없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던 일이 생각난다. 글쓰기에도 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문장 속에 있는 어휘가 얼마나 생동감 있는 단어가 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책 읽기에 관심과 열정이 조금씩 더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말하기도 중요하지만, 특히 글쓰기는 제도권 안에서 학문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훈련하고 다듬어 가야 함을 알게 되면서 좀 더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학술적 글쓰기는 바르고 확실한 표현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 어려움은 맞춤법을 비롯하여 띄어쓰기는 가장 기본이 되는 만큼 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으로 기본을 다지는 일이 절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마치 절벽을 마주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중. 고등 시절에는 작문이라는 과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대학에서는 교양과정에도 우리말 글쓰기가 있었던 기억이다. 그러나 정작 사회생활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물론이고 정작 내 마음의 정리된 생각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은 역시 글쓰기임을 깨달았다. 공자님이 지천명(知天命)’이라 일컫는 50살 무렵, 개인 블로그(Blog)를 만들어 일상생활 속의 느낌이나 감정의 정리 등을 매일은 아니지만 며칠에 한 번이 될지라도 기록해 보기도 하였다. 아무튼 모든 일이 그렇듯이 새가 날기 연습을 반복하듯이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 하나 전하면서 두 번째 이야기하려고 한다.

 중국 송나라 휘종 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하였고, 또한 훌륭한 화가였다고 한다. 어느 날 궁중의 화가들을 모아 놓고, 그림그리기 대회를 개최 하였는데 꽃을 밟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고 말하며 화가들에게 말발굽에서 꽃향기가 나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 것이다. 향기란 코로 냄새를 맡아야 알 수 있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난감하지 않을 것인가? 마침내 화가들 중의 한 사람 말을 따라가는 나비 떼를 그려 냄으로써 말발굽의 묻은 향기를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다.

 글쓰기에서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 또는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수단으로 하는가는, 마치 향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나비를 선택했다는 것과 같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표현해야, 읽는 사람에게 분명한 뜻과 느낌을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화가가 향기를 나비 그림으로 표현했듯이 글쓰기는 어떤 어휘를 써야 나의 글에 공감을 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닐지 여겨진다. 글쓰기를 함에 있어서 자신이 쓴 글을 대하는 사람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 대구 간송 미술관 전시회를 관람한 일이 있다. 그 가운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예 작품 침계(梣溪)”라는 유명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작품은 추사 선생과 30여 년간 교류한 윤정현(1793~1874)이라는 분의 아호(雅號)인데, 이 작품은 그의 부탁을 받고 30년간 고민하며 써낸 글씨로, 보도로는 곧, 문화재로 등재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긴 세월 동안 고민하면서 탄생한 작품이라면 혼이 깃든 작품이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감히 나로서는 평가 할 수 없지만, 많은 저명한 분들이 높이 평가하여 내린 결정이니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어떤 예술적 작품이라도 작가의 혼이 깃들어 있다면 감상하는 사람이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기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에게 몰입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요소를 자신의 글을 통하여 표현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나에게는 멀고도 험한 길로 보인다.